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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교회 백서 1 - 사건의 발단
  • 편집국 발행인
  • 등록 2025-06-01 21:54:44
  • 수정 2025-06-13 21:2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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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목사 위임이전 교회는 분쟁의 초입에 있었다.
  • 이진목사 위임과 함께 온갖 치부들이 드러났다.
  • 김화중 장로의 총회 정치욕심이 교회를 위기에 몰아 넣었다.

본지는 예고한 대로 북일교회 사건을 백서로 남기기 위해 준비하였다. 

북일교회 사건은 우리 총회 정치꾼들이 얼마나 부패했으며, 돈을 중심으로 형성된 담합현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총회 본회에서 정치꾼들이 사전 모의하면 총대 전체를 어떻게 기망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따라서 북일교회 사건은 백서로 남겨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모든 총대들과 교회들이 밝히 알 수 있게 할 것이다. 이 사건은 언론들까지 가세해 터무니없는 담합의 양상이 어떻게 진행될 수 있는지도 잘 보여주었다고 평가된다.


백서 기록에 있어, 이미 공식적으로 주님의 교회를 해치는 사람들의 이름은 실명을 기록하기로 한다. 그들은 모두가 공인으로서 자신을 드러내어 범죄를 지속하고 있고, 회개의 기회를 수없이 부여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아니하고 주님의 몸을 찢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지에서 게재하는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수정할 부분 또는 반박하고 싶은 내용이 있을 경우 본지에 바로 내용을 보내주면 사실관계 검토 후 반론 보도로 게재할 것임을 밝힌다.


본 백서에는 확인된 자료들을 첨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부득이한 경우 관련서류로 확인절차를 거친 후 기록하기로 한다.


제 1장 사건의 발단(2020년 10월 ~ 2023년 11월)


1. 2021년 이진 목사 부임과 원로목사 추대 과정의 예우 관련 잡음과 갈등 


이진 목사는 총신대학과 총신대학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총신대학 일반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부목사 시절 신천교회(잠실), 분당중앙교회(분당), 제자교회(목동), 은현교회(응암동), 동명교회(광주) 에서 부목사로 교육담당과 행정목사 등을 경험하고, 2020년 10월 4일부로 북일교회 동사목사로 부임하였고, 이듬해인 2021년 4월 17일 북일교회 위임목사로 취임했다.


이진 목사가 동사목사로 부임한 시기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였다. 교회마다 현장예배가 어려웠고, 북일교회도 마찬가지였다. 2020년 원로목사가 아직 시무하던 성탄절 예배때는 코로나가 심해져서 전면 영상으로 대체해야 하기도 했다. 


이진 목사는 동사목사 6개월 동안 성대결절 등 몸에 이상이 생길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잘 마치고, 공동의회에서 98% 찬성으로 위임목사가 되었고, 김익신 목사는 성도들의 박수로 원로목사 추대가 되었다.(증거1 2021.2.21. 공동회의록)


그런데, 당회에서 원로목사 전별금 문제로 갈등이 발생했다. 당회 안에서는 전별금을 10원도 줄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도 당회에서 합의를 통하여 결정한 것이 차량없이 7억 6천만원이었다. 21년 1월 31일 제직회가 열리자 김익신 목사는 자신의 은퇴관련 내용을 자신의 입회하에 다루는 것이 불편하다며 갑자기 서기 장로에게 회의를 맡기고 이진목사를 포함 모든 교역자들을 회의에서 나가게 하였다. 그리고, 마치 짜여진 각본대로 김익신 목사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권사와 원로장로, 안수집사등이 차례로 발언을 하면서 당회원들을 압박했고, 전별금은 차량 포함 10억으로 상향되어 결정이 되었다.(증거2 2021.4.4제직회의록) 


원로목사 전별금을 처리하는데 있어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김익신 목사는 후임목사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경기도 송추에 있는 집을 매수 계약하고, 비용 청구를 했다. 문제는 당시 교회는 본당 건축 후 갚아야 할 빚이 남아 있었고, 원로목사 전별금을 지급하느라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김화중 장로는 이진 목사를 찾아와 담임목사 사택을 팔아서 원로목사 집값을 먼저 치뤄주고, 이진 목사는 사용하던 동사목사 사택에 몇 년 더 지낸 후에 신축하는 아파트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화중 장로를 반대하는 00 장로는 이진 목사에게 전화하여 원로목사 집값을 주겠다고 담임목사 사택을 파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만약에 사택을 팔면 당회원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이진 목사에게 강하게 압박하기도 했다. 그러자 원로목사와 김화중 장로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제직회에서 이것을 이슈 삼아서 지난 번 전별금 문제를 해결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해결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회 안에서 이 문제로 김화중 장로쪽과 반대쪽이 팽팽히 맞섰고, 이진 목사가 담임목사 사택을 전세로 내어주어 그 비용으로 원로목사 집값을 충당하고, 대신에 자녀가 넷(당시 고3, 중3, 중1 아들 셋과 초5 딸)이나 되었던 이진목사는 30년이 넘은 30평대 아파트였던 동사목사 사택에서 몇 년 더 사는 불편을 감수하기로 결정하면서 겨우 문제를 봉합할 수 있었다. (증거3 2021.4.4. 제직회의록)


김익신 원로목사는 현역시절 타던 K7 차량을 두고, 은퇴 이후에 사용할 새 차량을 구입했다. 이진목사는 담임목사 차량을 양도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김익신 원로목사는 새차를 구입해서 타면 된다며 자신이 타던 차량은 이미 줄 사람을 정해뒀다고 했다. 이진 목사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원래 가지고 왔던 개인차량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지금도 사용 중이다). 그런데 당시 차량위원장을 맡고 있던 장로가 임의로 원로목사에게 요구하여 K7 차량을 되찾아 왔고, 그것을 당회나 담임목사와 상의없이 처분을 하고, 판매비 4백만원을 본재정에 넣는 사건이 발생했다. 장로 개인이 당회도 거치지 않고, 그것도 권리가 있는 담임목사와 상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이런 일을 벌인 것이었다. 더 황당한 것은 알고보니 이 K7 차량을 받은 사람이 바로 김화중 장로였다는 것이다. 


당시 김화중 장로는 원래 타던 차량이 노후되어 어려움을 겪던 차에 이와 같은 일을 저지른 것이었다. 지금도 김화중 장로는 이 차량을 이용하고 있다. 원로목사는 왜 후임자가 써야할 교회 차량을 자신의 개인차량처럼 맘대로 처분하고, 그것을 자신이 총애하던 장로에게 넘긴 것일까? 이런 모습들이 교회 안에 그리고, 당회 안에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당시 21년 6월 13일자 당회록에는 "원로목사 기존 차량이 반납되고 매도하기로 하다"로 기록되어 있으나, 통장 기록에 보면 이미 6월 1일에 김화중 장로가 4백만원을 입금한 기록을 볼 수 있다. 후처리를 한 증거인 것이다. 원로목사는 K7차량을 교회 집사가 운영하는 카센터를 통하여 교회 재정으로 거의 신차에 가깝게 정비를 마친 상태였다고 한다.(증거4 당회록, 증거5 통장거래내역)


23년 9월 북일교회로 세무조사 통보장이 날아들었다. 김익신 원로목사에 대한 탈세 신고가 접수된 것이었다. 김익신 원로목사가 퇴직금(전별금)을 받으면서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미 몇 사람이 김익신 원로목사에게 세금을 내지 않으면 탈세 신고를 하겠다는 말을 전달했다고 하는데, 김익신 원로목사는 이를 무시하다가 신고를 당하게 된 것이다. 교회는 세무조사를 받아야 했고, 원로목사는 세금을 내야 했다. (증거6. 탈세관련 세무조사통보)

김익신 원로목사는 교회에서 전별금을 받을 때, 의도적으로 세금을 피하고자 현금으로 전달받은 것으로 보여진다. 당시 원천징수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라고 주장한 집사도 있었으나, 이를 무시하고, 세금을 내지 않았다가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사건이 터지자 이를 알게 된 성도들은 김익신 원로목사가 현역시절에 세금을 잘 내야 한다고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고 그렇게 강조하며 설교를 했는데, 정작 본인이 세금을 내지 않아서 교회 망신을 시켰다고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김익신 원로목사는 조기은퇴를 한다고 늘 강조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기은퇴의 시기가 교회 부지 토지 보상금이 나오는 시기와 맞물려 있어, 결과적으로 자신은 전별금 10억을 고스란히 받고, 후임 이진 목사에게는 주차장이 없어 건축을 해야 하는 어려움과 김화중 장로의 총회 진출까지 예민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다 떠넘기는 꼴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익신 원로목사는 북일교회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서기는 커녕 뒤에서 일을 키우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2. 원로목사 은퇴 직후 미투 사건 발생(피해자 녹취록 보유)과 당회의 불완전 수습

 

이진 목사의 위임식과 김익신 목사의 원로 추대식을 마친 후 얼마 되지 않아 A 장로가 이진 목사를 자기 사무실로 불러내었다. 그곳에는 B 장로도 함께 있었다. A 장로는 원로목사의 미투 사건이 터졌다며 이진 목사에게 휴대폰에 있는 녹음파일을 들려주겠다고 했고, 이진 목사는 이를 거절하였다. 이진 목사는 A 장로에게 김익신 원로목사에게 직접가서 해결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고, 이진 목사 본인은 알고 싶지도 않다며 녹음파일 듣기를 거절하였다.(증거7 미투사건피해자 녹취록)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 내에 녹음파일이 퍼지면서 원로목사의 미투 사건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익신 원로목사와 20년을 같이 해온 성도들은 김익신 목사의 미투 사건을 문제 삼기 보다 오히려 피해자인 여집사에 대하여 마녀사냥이 시작되었다. 원로목사의 측근인 권사는 피해자 여집사를 ‘꽃뱀’ 이라 노골적으로 비난하기도 하였다. 어떤 권사는 자신들은 원로목사에게 제자훈련을 받을 때, 새벽 2시든 3시든 호출이 있으면 언제든 달려 나왔고, 훈련 과정 중에 전혀 모르는 남자들과 껴안으라고 해도 그대로 순종하고, 그것이 옳다고 배웠는데, 원로목사가 기도해주려고 손 좀 잡는 것을 가지고, 호들갑을 떨었노라고 피해자에게 화를 냈다고 한다. 결국 이후로 피해를 당한 여집사는 더 이상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2021년 8월 당회에서 일부 장로들이 원로목사 미투사건을 공식적으로 다룰려고 하자 장로들 간에 충돌이 있었고, 급히 당회가 폐회가 되었다. 이 날 당회는 기록으로도 남기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이후에 말다툼을 하던 중에 원로목사를 위해 변호하던 백시문 장로에 대하여 B 장로가 비꼬듯 이야기 했고, 이것이 불씨가 되어 백시문 장로와 B 장로간에 몸으로 부딪히는 일이 생겼다. 이후에 백시문 장로가 사과를 했고, 둘 사이에 화해를 하고, 당회원들 모두 앞에서 백시문 장로가 사과를 함으로써 모든 일이 잘 마무리 된 듯이 보였다. 그런데, 이진 목사에게 불만을 품은 B 장로가 당회에서 화해한 것을 번복하고, 백시문 장로를 대상으로 다시 고소하고, 원로목사 반대쪽에 있던 장로들이 실제로 주먹 다툼 등이 있었던 것이 전혀 아닌데도 마치 백시문 장로가 일방적으로 무슨 폭력을 가한 것처럼 허위에 가까운 진술 내용을 똑같이 써서 법원에 제출하게 됨으로 백시문 장로가 벌금형을 받게 되었다.

사실 백시문 장로는 원로목사의 미투 사건을 무마하고자 노력한 것인데, 후에 원로목사를 따른다는 김정곤 집사가 제명을 당하고 난 후 상소와 동시에 절차에 맞지 않은 방법으로 백시문 장로를 노회에 고소하고, 백시문 장로는 노회에서 면직을 당하기까지 했다. (증거 8 당회록)

 

김익신 원로목사는 미투 사건 이후에 본 교회에 거의 나오지를 않았는데, 그 직접적인 이유가 피해자 여집사가 북일교회에 나와서 강단에 서면 사건을 터뜨려서 망신을 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이진 담임목사는 김익신 목사가 은퇴 후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였고, 김익신 목사의 생일에 고희 잔치를 식당을 빌려 손님들까지 불러서 열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김익신 목사는 미투 사건이 발생한지 한참이 지난 후에 갑작스럽게 이진 목사에게 전화해서 왜 자신에게 연락해서 미투 사건에 대하여 묻지 않느냐며,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이냐며 서운해 하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고 한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미투 사건을 일으켜 후임 목사에게 부담을 안겨주고, 교회 내에 갈등이 일어나는 단초를 제공한 것에 대하여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그것이 원로목사가 후임목사에게 할 소리인가? 도대체 부끄러움이라고는 없는 것인가?


현역시절 김익신 목사는 은퇴한 선배 목사들을 지적하며, 아무리 잘 해도 곱하기 0을 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며, 은퇴 후에 더 잘해야 한다고 수차례 말하고 또 성도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지금 북일교회 성도들은 김익신 원로목사의 모습을 보면서 곱하기 0이 아니라 마이너스를 만들고 있다고 평가하며, 지난 20년간 김익신 목사에게 무엇을 배운 것인지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3. 김화중 장로의 부동산 매입 시 부당이득 편취의혹과 장로들의 고소


2021년 8월 장로 두 사람이 이진 목사를 찾아와 김화중 장로가 과거에 교회 부동산을 매입하면서 2천 8백만 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가 있다고 고발을 했다. 이진 목사는 김화중 장로 본인에게 사실 관계를 확인해보고 처리를 하자고 했으나 장로들은 김화중 장로를 바로 형사고발 하겠다고 주장했다. 

 

김화중 장로는 이진 목사를 찾아와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형사고소 대신 민사고소를 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였고, 당시 총회 부회계 출마를 준비하고 있던 예민한 때라 빠른 해결을 위해 이진 목사는 김화중 장로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한 김화중 장로를 반대하는 장로 6명(시무 5명, 은퇴 1명)은 이진 목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김화중 장로를 형사고소하게 되었다. 김화중 장로는 형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부회계 출마도 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 가운데 처해 있었기 때문에 이진 목사를 찾아와 임시 제직회를 열어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하였다. 제직회 석상에서 마이크를 잡은 김화중 장로는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며, 만약 자신이 부당한 이득을 취한 것이 밝혀질 시에는 자신이 장로직을 내려놓고, 반대로 자신이 부당한 이득을 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면 문제를 제기한 장로들에 대하여 시무 투표를 할 것을 제안했고, 다른 장로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증거 9 2022.5.1. 제직회의록)


사건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고, 공인중개사와 법무사까지 참관을 했던 거래인데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2천 8백만 원을 교회가 땅 주인에게 돈을 더 지급한 것은 사실로 밝혀졌다. 그러나, 거래 과정 가운데 김화중 장로가 부당한 이득을 취한 정황은 밝혀지지 않았고, 이에 따라서 장로 4명의 시무 투표를 하는 공동의회가 열리기로 결정되었다. 


이진 목사는 여러 차례 합의를 종용하고, 형사고소를 취하하고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였지만, 김화중 장로는 완강히 거부하고, 시무 투표를 강행할 것을 요구하였고, 반대쪽 장로들도 강하게만 대응하다가 결국 시무 투표를 통하여 4명의 장로 모두 불신임 되었다. (증거 10 장로들이 이진 목사에게 보낸 협박장) 이 사건으로 인하여 이진 목사가 원로 목사와 김화중 장로 편에 서 있다며 실망하여 안수집사 몇 가정이 교회를 나가는 일도 있었다. 

이진 목사는 장로들에 대한 시무 투표를 하는 것에 대하여 부담을 많이 가지고, 원로 목사에게 물었으나, 김익신 원로 목사는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고름이 살 안된다” 며 간접적으로 시무 투표를 독려하여 그대로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김화중 장로는 그렇게 이진 담임목사를 이용하여 임시 제직회에서 재정과 관련없는 자신의 건을 다루게 하여 반대하던 장로들을 내치고, 총회 부회계 선거에 나갈 수 있게 되었고, 결국 당선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마치 이진 목사가 장로들을 내치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목사로 몰아가며 비방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김화중 장로는 부회계 선거에 출마하면서 금권선거를 하지 않겠다고 하고, 오로지 담임목사님과 원로목사님을 잘 섬기면서 겸손하게 총회를 섬기겠다고 출마연설을 했다고 한다. 많은 총대들이 김화중 장로의 이런 모습을 보고, 표를 주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담임목사를 죽이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담임목사들 사이에 교회 장로가 총회 정치에 뜻을 두면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말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 때문일 것이다.


시무가 정지된 4명의 장로들은 이후에 자신들을 시무투표한 것에 대하여 부당하다고 이진 목사를 대상으로 자신들의 장로직을 회복시켜 달라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치열한 법적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정작 김화중 장로는 부회계 당선 후에는 분명히 자신의 일 때문에 야기된 법적 싸움인데도 불구하고, 총회 일에만 매달렸고, 심지어 당회에서 이진 목사에게 자신이 부회계 되는 데 도와준게 뭐가 있냐며, 자신은 이미 무혐의가 되었으니 나머지는 자신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그동안 김화중 장로편에서 협조하던 다른 3명의 장로들이 김화중 장로와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소송을 제기한 장로들이 패소하여 장로들 중 2명은 타교회로 가고, 2명은 남아서 이제는 원수처럼 싸우던 김화중 장로편에 서서 이진 목사를 쫓아내려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고 한다. 



4. 김화중 장로의 총회 부회계 출마에 따른 후보 등록금 교회 재정 사용 시도와 당회원들 간 갈등

김화중 장로는 자신에 대한 다른 장로들의 형사 고소건이 처리가 되자 본격적으로 총회 부회계 선거에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김화중 장로는 총회 부회계 선거에 나갈 때 내는 등록금 2천만원을 이진목사에게 처리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유가 있었다. 

김익신 원로목사는 연중 부활절과 성탄절 절기헌금을 액수에 상관없이 목회활동비로 사용했다. 20년전 부임하던 시절부터 약속을 받은 내용이라고 했다. 당시에는 금액이 많지 않아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도가 늘어나면서 절기헌금 액수도 늘어났고, 1년이면 3천~4천만 원을 넘어서자 원로장로 중 한 사람이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김익신 목사는 이미 정해진 것이라며 무시하였다. 


문제는 김익신 목사가 절기헌금을 쓰기로 교회와 이야기할 때는 그 용도를 구제헌금 또는 선교헌금으로 쓰기로 한 것인데, 실제로는 상당 부분을 김화중 장로의 정치활동과 관련한 연합회 지원비 등으로 썼다는 것이다. 김화중 장로는 이것을 발판으로 연합회 등에서 입지를 다지고, 김익신 목사를 초청하여 설교를 세우는 식으로 서로 상부상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진 담임목사가 위임목사가 된 뒤에도 외부에서 식사한 영수증을 들고 와서 이진 목사에게 처리해 달라는 식으로 요구하고, 밥값을 받아가기도 하였다. 구제도 선교도 아닌 일에 교회재정을 이용하고 있었다. 


이진 목사는 위임목사가 되던 해에는 절기헌금을 일체 사용하지 않았고, 공동의회를 통하여 이듬해부터 절기헌금은 본 재정으로 돌리고, 별도의 목회활동비를 책정하여 사용하였다. 그리고, 21년부터 성탄절기헌금은 당회를 통해 취지에 맞게 노회 안에 30여개 미래자립교회들과 교회가 지원하는 교회들, 그리고, 교회 안에 어려운 성도들에게 난방비로 각 30만원씩을 지원하는 사역을 시작하였다. 이것은 이후로 매년 시행되었다. 


김화중 장로가 부회계 등록비 2천만 원을 지원해 달라는 말에 이진 목사는 금액도 크고 절차상 당회 안건으로 올려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고, 김화중 장로는 원로목사 때는 무엇이든 다 지원해 주었는데, 이진 목사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며 반발했다. 당회로 안건이 올라가고, 당회원들은 총회 활동은 개인활동이니 당연히 자비로 하는 것이 맞다고 결정을 하였다. 그래도 당회원들은 사비로 마음을 모아서 활동비를 전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때부터 김화중 장로는 이진 담임목사에게 반감을 품기 시작하였고, 부회계에 당선되고 나자 이진 담임목사에 대한 태도는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오후 예배는 행사를 핑계로 무단으로 빠지기 일쑤였고, 당회에서는 사사건건 담임목사의 의견을 묵살하거나 반대하기 시작하였다. 

 

 

5. 첫 임직과 장로 선거 탈락자 김정곤 집사의 반교회적 행위 점화

2021년 12월 이진 목사가 위임목사가 되고, 첫 임직자 선거가 있었다. 북일교회는 원로목사 시절 독특하게 스스로 자기를 후보로 추천하는 제도를 만들어 시행중이었다. 자천하여 올라온 후보들 중 장로 후보가 4 명이었는데 이 중 3명이 떨어지고 1명이 선출이 되었다. 떨어진 3 사람 중 한 사람은 교회를 떠났고, 나머지 2 명중 한명이 바로 김정곤 집사였다. 장로 선거에 낙마한 두 안수집사가 이 때부터 급속도로 김화중 장로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장로 피택에서 떨어진 후 김정곤은 남전도회 회장으로 섬기면서 점점 부정적이 되가더니 2024년도 안수집사 회장 선거에서 사전에 당회의 허락도 없이 당일 회칙을 바꾸어 순서를 무시하고 본인이 안수집사 회장이 되었다. 


안수집사 회장이 된 김정곤 집사는 그 때부터 은퇴집사까지 묶어서 안수집사 카톡을 만들고, 그 안에서 당회와 담임목사에 대한 온갖 비방을 쏟아내고,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잘 모이지도 않던 안수집사 모임을 모이면서 교육관 건축을 이슈 삼아서 당회와 담임목사를 대적하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본인 임의로 현수막을 만들어서 수요예배 후에 교회 로비에서 시위를 하고, (증거 11 수요예배 시위사진 / 증거12안수집사카톡사진)건축에 관하여 온갖 허위사실을 유포하며,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당회원들이 나서서 몇 번이고 권면하였지만 듣지 않았고, 심지어 2023년 5월 7일 주일 대표기도 시간에는 나와서 마치 웅변을 하듯 팔을 휘드르며, 이진 담임목사에 대한 비방으로 기도를 채웠다. 



6. 이진 목사 부임 전 비전센터 조감도까지 준비한 상태, 위임 후 비전센터 건축 공동의회 결의와 김화중 장로의 공동의회 결의 무시 및 반교회적 행위

이진 목사가 북일교회에 부임하기 전부터 교회 벽에는 커다란 비전센터 조감도 라는 것이 붙어 있었다. 얼마 전에 김화중 장로측에서 증거를 인멸하려고, 임의로 철거하여 현재는 사라지고 없다. (증거 13 비전센터조감도 해체)

이미 언급한 김화중 장로가 구입했다는 땅의 이름도 비전센터 부지였다. 성도들은 이 땅을 구입한 비용에 대하여 헌금을 하면서 갚아 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교회 주차장으로 사용하던 교회 부지의 대부분을 익산시에서 강제로 수용하면서 그곳에 공원을 조성하게 되었고, 교회는 주차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된 상황이었다. 


공원 밑으로 지하 주차장을 만들려고 계획을 하기도 했으나, 가격대비 주차가능대수가 너무 적게 나와서 이미 구입해 놓은 비전센터 부지에 지하주차장을 겸하는 교육관을 신축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미 이전부터 준비가 되고 있었던 것이었기에 2021년 12월 당회 때, 비전센터 신축을 결의하였고, 그해 공동의회에서도 성도들의 박수로 통과가 되었다. 당회에서는 건축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하고, 이진 목사는 선임장로였던 김화중 장로를 건축위원장으로 추천하여 당회에서 임명하였고, 추가로 두 명의 장로를 위원으로 선정하였다. 김화중 장로는 서기와 회계가 필요하다며 지난 장로 임직에서 탈락한 김정곤 집사와 A 집사를 추가로 위원으로 선정했다. 

그런데, 김화중 장로는 건축위원회 첫 모임에서 일방적으로 건축은 불가능하다며 이전에 당회에서 건축이 아니라 교회 옆에 인접한 주택 3채를 구입하기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회에서 결정한 기록이 있으나, 당회에서 이미 다룰 때, 해당 주택을 구입해도 주차장 문제등이 전혀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고, 집값도 너무 올라버려서 가능하지 않은 안이라고 결정했던 사안이었다. 또한 문제가 된 것은 주택 3채 중 2채는 김화중 장로의 친인척의 소유이며, 나머지 1채도 김화중 장로와 친한 지인의 소유였다. 무엇보다 주택들의 위치가 교회의 주차장이나 진입로를 확보하는데, 전혀 도움이 안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당회에서 이전 결정을 취소하고, 교육관 신축을 결의한 것이었다.)


김화중 장로는 이미 당회와 공동의회에서 통과한 사안을 건축위원회 모임에서 비전센터 건축 여부를 투표하자고 제안하고, 본인이 데려온 두 집사와 세 명이 반대표를 내면서 건축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황당한 보고를 당회에서 했다. 당회에서는 건축위원회의 취지에 벗어나는 일을 했음을 지적하고, 김화중 장로를 건축위원장에서 해임하고, C 장로를 다시 건축위원장으로 임명하여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김정곤 집사 등은 이후로도 계속 건축을 반대하며 안수집사 일부는 2021년 공동의회에서 비전센터 신축을 박수로 받은 것이 불법이라는 주장을 1년 가까이 지속하였고, 2022년 공동의회에서 다시 거수를 통하여 교육관 신축을 다시 결의하게 되었다.

 

건축위원장을 중심으로 당회에서 건축을 위한 CM을 선정하기로 결의 하였는데, 이는 이전에 본당을 건축할 시에 부실공사 등 어려움이 많아서 공정한 업무를 진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김정곤 집사등은 CM은 과도한 비용이 들고, 이진 목사가 있던 광주 업체를 선정했다는 허위사실(서울의 업체였다)을 유포시키면서 건축위원회의 활동을 방해하였다. CM 최종선정은 성도들을 모아 공청회에서 설명을 듣고 결정을 하려고 하였으나, 김정곤 등의 방해로 무산되었다.

 


7. 당회와 제직회와 공동의회 결의를 무시한 김화중 장로와 김정곤 집사의 건축 반대와 교회의 대응

김정곤을 비롯한 안수집사 쪽에서 느닷없이 교회 앞 도로가 맹지라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건축이 애초에 불가능하다며 건축반대 의견이 급물살을 탔다. 교회 앞 도로는 수십 년 동안 현황도로(지적도상 길로 등록되지 않았지만 사실 상 길로 사용되는 토지)로 사용되어 왔기에 건축허가 받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당시 토지 수용후 공원 조성관계자와도 도로 관련하여 협의 과정 중에 있었다. 그러자, 반대쪽에서는 의도적으로 시청에 민원을 제기하여 진행을 방해하고, 맹지라는 말을 교회내에 퍼뜨리기 시작했다. 이후 2025.1월 기독종합신문(박기성 기자)에 올라온 기사를 보면 김익신 원로목사가 주택 3채(2채는 김화중 장로 친인척의 소유, 1채는 김화중 장로 지인의 소유)를 구입하기로 한 것도 교회가 맹지가 안되게 하기 위한 것처럼 인터뷰를 했는데, 이는 완전 허위사실로 밝혀졌다. 주택 3채의 실제 지적도를 확인하면 구입하려던 주택을 모두 구입한다고 하더라도 교회는 여전히 김정곤 집사가 주장하는 맹지일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있는 정말 쓸모 없는 주택들이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북일교회는 꾸준히 익산시와 협의하여 교회 앞 도로를 건축이 가능한 일반도로로 허가를 받아냈다. 결국 저들의 주장이 반대를 위한 억지 주장일 뿐이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애초에 이런 부분은 교회가 함께 힘을 모아 기도하면서 관과 협의하여 충분히 풀어갈 수 있는 문제였는데, 김정곤 집사 등은 억지 생트집을 잡은 것이었다. 


북일교회는 교회 앞 주차부지를 모두 익산시에 강제수용 당하게 되었지만 시에서는 그곳에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고, 북일교회 건너편에는 900세대 가까이 되는 아파트 신축단지가 지어지고 있다. 시에서는 부지값으로 50억 가량의 보상금도 교회에 지급해 주었다. 그 덕에 김익신 원로목사도 10억이라는 적지않은 전별금을 받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부족한 주차장을 포함한 이진목사가 부임할 때부터 제시했던 다음세대를 위한 교육관을 그 비용으로 지었더라면, 북일교회는 전보다 더 부흥하며, 선교의 사명을 더 잘감당하는 교회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럼에도 정치 장로 한 사람과 이를 동조하는 부정적인 안수집사가 그저 담임목사를 음해하고 쫓아내려는 일에만 매달려서 현재 북일교회는 성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심각한 혼란과 진통을 겪고 있다.  



8. 이진 목사를 제외한 당회원들에 의해 김화중 장로 노회 총대 탈락과 노회 정치꾼들의 개입

 

김정곤 집사의 행태는 계속되었고, 당회원들의 인내는 한계를 넘었다. 몇 번의 권면 끝에 김정곤 집사에 대한 치리회를 열고 제명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김정곤 집사는 자숙하기는 커녕 노회에 상소를 하고, 더 나아가 김화중 장로와 연결되고, 원로목사와 친분이 두터운 노회 임원들과 결탁하여 이진 목사에 대하여 별도의 고소장을 함께 올려 이진 목사에 대한 재판국을 열게 하였다. 

총회헌법 권징조례에서 상소하는 자는 제명인 경우 그것을 그대로 유지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김정곤 집사는 여전히 제명 상태로 교인 자격이 없기 때문에 상소건이 처리되기 전에는 이진 목사에 대하여 고소할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리노회 당시 서기였던 고병동 목사는 절차에 맞지 않는 김정곤 집사의 고소 서류를 접수하고, 이를 노회에 올려서 이진 목사에 대한 재판을 열게 했다. 


이진 목사의 죄의 주된 내용은 제직회에서 재정만 다뤄야 하는데, 김정곤 집사에 대한 건을 다루었다는 것이었다. 제직회에서 이진 목사가 1시간 30분에 걸쳐서 일방적으로 김정곤 집사의 내용을 이야기해서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확인한 바로 당시 제직회는 1시간 5분 진행되었고, 이진 목사가 발언한 것이 아니라 서기 장로가 15분 정도 김정곤 집사가 당회와 담임목사에 대하여 허위사실을 유포시킨 것에 대하여 보고하였고, 이후에 40분 가량은 김정곤 집사 등이 의장인 이진 목사의 만류에도 무시하고, 앞으로 뛰쳐나와 마이크를 잡고, 자신들의 주장을 한 것이 동영상으로 그대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이리노회 재판국(재판국장 김재규목사)은 제대로 사실을 조사도 하지 않은채 일방적으로 김정곤 집사쪽의 의견을 그대로 판결문에 적어 허위사실을 근거로 이진 목사에게 일방적으로 불법한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진 목사는 교회 성도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어서 노회 어른 목사님들의 조언을 들어 정직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6개월을 보내기로 했고, 그래도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총회에 상소를 올리게 되었다.


 이진 목사 부임 후 첫 대심방 때, 김화중 장로는 하나님께서 본인에게 주신 비전이 있는데 그것은 총회 회계까지 섬기는 것이라고 했다. (증거14 기독신문부회계인사) 더 이상 욕심은 없고, 회계까지만 하고 아름답게 은퇴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회계를 마칠 때가 되자 김화중 장로는 갑자기 재정부장과 그 이후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해야겠다며 당회원들에게 총대 추천을 요구하였다.

김화중 장로는 부회계, 회계를 거치며 자신을 추천하고 당회원들에게 감사하기보다 해준 게 뭐가 있냐며 항상 불만이 많았고, 당회에서 결정하는 모든 의견에 늘 혼자 반대를 해왔다. 

당회원들은 이런 김화중 장로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결국 이진 목사를 제외한 당회원들에 의해 천서를 받지 못해 총회 재정부장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김화중 장로는 본인이 당회에서 천서를 받지 못한 것을 가지고, 마치 이진 목사가 불법을 행한 것처럼 호도하고, 정치꾼들의 카르텔을 동원해 특별재판국을 조직하고, 특별재판국은 또 이것을 받아서 이진 목사에게 면직을 판결했다.



예고

제 2장 이리노회 정치꾼들의 개입과 불법 재판

1. 김정곤 집사에 대한 제명처리와 노회 정치꾼들의 개입

2. A 목사의 개입과 불법적 노회 재판국

3. 기독신문의 사실과 다른 편파적 보도

4. 불법 고소장에 의한 이진 목사 유기정직과 총회상소

5. 총회 회계 김화중 장로에 의한 총회 정치꾼들의 개입





증거 1. 공동회의록

 


증거 2. 제직회의록


 


증거 3. 제직회의록



증거 4. 당회록


증거 5. 통장거래내역


증거 6. 탈세관련 세무조사 통보서







증거 7. 원로 목사 미투 녹취록


증거 8. 


증거 9. 김화중장로 토지매입건 제직회의록


증거 10. 장로들이 이진목사에게 보낸 협박장


증거 11. 수요예배현수막 시위


증거 12. 안수집사 카톡들


증거 13. 비전센터조감도 증거인멸


증거 14. 김화중장로 부회계인사 기독신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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